즐거운 밀리터리ㆍ아웃도어 세상
전술적 일상을 추구하는 요원들을 위한
Plumbum의 전술 논평
NETPX | 2025-01-22 09:06:46 | 조회수 158
지금으로부터 두 갑자 전인 1905년, 을사늑약.
국권을 빼앗겼던 당시의 사람들은 스산하고 쓸쓸한 시대에 몸서리치며 ‘을사년(乙巳年)스럽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구전되어, 국어사전에 ‘을씨년스럽다’는 흔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120년이 흐른 2025년이 되었다. 두 갑자를 돌아 그 ‘을사년’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2025년 새해, 푸른 뱀의 해라는 을사년.
새해 복을 태평하게 빌고 있기에는 요즘 세상은 너무도 ‘을씨년스럽다’.
단순히 나라를 빼앗길 것만 같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살던 삶의 방식이 불특정 소수의 돌발행동에 의하여 쉽게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이 그렇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회의 공공선이 불신을 사는 반면, 개인의 자의적인 정의 실현을 부추기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는 것 같아 장차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가 없다.
2024년 4월 19일, 교통 및 차량제조업, 법조계 등 여러 분야에 의미 있는 실험이 벌어졌다.
소중한 아이 ‘도현이’가 숨졌던 안타까운 사건의 현장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급발진 사건 당시와 같은 차종과 운전 조건을 갖추어 차량의 급발진이 벌어지는지를 직접 시험하였다.
차량 급발진으로 숨진 도현 군의 아버지는 “경제적 약자이자 차량설계도면 하나 받을 수 없는 소비자가 (차량 과실을) 증명해야 되는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현실이 가장 답답했다”는 울분 어린 말을 남겼다.
2024년 5월 21일, 드디어 악의 무리를 잡았다. 이른바 서울대판 ‘N번방’ 사건의 피의자 5명을 검거한 쾌거다.
서울대학교 졸업생이던 박 모 씨를 비롯한 5명 일당은 약 100여 명의 여성 지인들의 사진이나 영상을 합성하여 가상의 음란물을 무려 4,000개가 넘도록 만들어낸 악행을 저질렀다. 피해자의 수와 불법 합성물의 수를 헤아려보면 짐작되듯, 하루이틀 한 솜씨가 아니다. 마치 공권력이 작정하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 의심은 사실이다. 피의자 5인의 악의 터전이자 SNS의 일종인 ‘텔레그램’은 익명성이 높고 암호화되어 있으며, 해외에 뿌리를 두고 있어 국가에 매인 공권력이 수사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수사에 대한 촉구는 번번히 수사가 중단되거나 기각되었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추잡한 악의 성채는 의외의 인물들 덕에 무너져내렸다. 디지털 성범죄 취재 기자이자 활동가 단체인 ‘추적단불꽃’의 2인조가 잠입을 통한 증거 수집과 추적 등 악착같은 노력을 다한 덕이었다.
이 나라 경찰 13만 명과 검찰 소속 만 여 명이 못한 수사를 고작 민간인 2인조가 해내다니. 여러모로 요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24년 5월 23일, 인제에 위치한 육군 제12보병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젊은이가 허무하게 세상을 떴다.
신병교육대의 중대장은 군기훈련이라는 명목에도 걸맞지 않고, 육군의 얼차려 규정에도 맞지 않는 가혹행위를 훈련병들에게 자행했다.
종장에는 근육이 녹아내린다는 횡문근융해증, 열사병, 다발성 장기부전 등이 훈련병을 덮쳤다. 2002년생 젊은이, 입소 13일차의 훈련병 박 모 군은 그렇게 허망하게 숨졌다.
최근인 2025년 1월 6일, 1심에서 춘천지법은 가혹행위를 저질러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장과 부중대장에게 죗값을 매겼다. 각각 징역 5년, 징역 3년이란다.
사랑과 정성을 담아 아들을 길러 온 박 모 군 부모의 지난 20여 년 세월은 부서졌다.
2024년 8월 1일, 인천의 청라동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의 지하주차장에서 전기자동차가 불타올랐다.
아파트 단지는 곧 수도와 가스, 전기가 들지 않는 네모 반듯한 동굴의 군집체로 전락했고, 거주민들은 스마트폰 하나조차 집에서 충전시킬 수 없을 정도로 문명을 박탈당했다.
이에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이 사건에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를 하였으나 ‘명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허무한 결론을 내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일상이 한순간에 망가진 이들은 많지만 그들이 온전히 구제받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2024년 8월 30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 단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10대 중학생 모 양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인가를 받지 않은 게제물을 거울로부터 떼어냈다.
아파트의 공공기물인 엘리베이터 내부 거울을 3분의 1 가량 덮고 있던 비인가 게시물을 떼어낸 입주민의 흔한 행위는 어째서인지 범죄로 취급되었고, 관할서인 용인동부경찰서는 모 양을 검찰에 송치하였다.
이후 용인동부경찰서 온라인 게시판은 난장판이 되었다. 현관문에 붙은 전단지를 임의로 떼었으니 자수한다는 글이나, 와서 불법 전단지를 떼어내 달라는 부탁 등 시민들은 냉소적인 조롱으로 응수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사건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일들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대동소이한 맥락을 읽어내어, 이에 염려를 담은 물음이자 위험한 질문을 던진다.
의료, 보건, 법률, 치안, 안전, 교육, 복지, 교통, 상업, 국방, 그 이외의 공명정대함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에서.
만일 공공선이 모두에게 충분한 정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여겨진다면.
과연 사회의 개인들은 어떤 개별적인 생각과 행동을 벌일까.
천재지변이 아닌 이상, 해를 입은 사람이 있다면 해를 가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해를 입은 사람의 억울함을 달래고 해를 가한 사람을 찾아 벌하여야 할 공공선이 요즘따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행여 ‘개인이 억울함과 피해를 호소함을 넘어,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는 위험한 교훈이 만인에게 퍼질 것만 같다.
사회의 모두가 이 글을 읽는 요원들과 같이 이성적이고 윤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적절한 조치를 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큰 문제가 벌어지지 않겠다.
그러나 세상을 겪어 본 요원들이라면 알듯,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세상 모두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이성적이고 윤리적이던가.
울분에 찬 누군가는 불특정 다수에게 무분별한 앙심을 주체하지 못하여 날붙이를 겨눌지 모를 일이며, 누군가는 홧김에 차를 몰아 거리의 행인들을 들이받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홀로 나서서 나름대로 믿는 정의를 이행한답시다고 애먼 사람을 해하는 일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른바 ‘고독한 늑대Lone Wolf’의 등장.
안보학에서는 ‘어느 정부나 테러리즘 단체의 지원도 받지 아니한 채 단독으로 계획, 행동하는 테러분자’를 뜻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으며, 수 년간 미국의 연방수사기관과 정보기관도 추적과 제압에 애를 먹는, 작지만 강한 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 ‘고독한 늑대’형 테러의 대표사례인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테러 사건.
미국 샌디에고 대학의 국제안보학 선임연구원 엘리 버먼 교수는 “(기존의 테러리즘에 비해) 이례적으로 보인다” 라고 평했다.
어느 조직과도 연계되지 않은 개인의 산발적인 파괴행위는 조직 단위의 인적, 물적 교류가 없어 추적이 까다롭다.
물론 그런 과격한 사람이 절대 다수는 아니다만, 100명 중 하나, 1,000명 중 하나라도 우리와 함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전술한 조건과 비슷한 환경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찾아볼 수는 있겠다.
2004년, 미국 콜로라도 시와 지역 공장주에 의하여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짓밟혔던 억울한 사내가 벌인 일명 ‘킬도저Killdozer‘ 사건.
범인 마빈 히메이어Marvin John Heemeyer는 자신의 작업장과 도로변을 잇는 진입로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모든 합법적 창구를 통한 읍소가 기각되었다.
이후 더는 잃을 게 없는 수준까지 몰린 그는 기어코 파괴적인 방법으로 울분을 풀어내었다.
▲ 파괴 난동의 불도저, 이른바 ‘킬도저Killdozer’
코마츠 D355A 불도저는 중화기도 막는 복합장갑, 외부 관측 카메라, 양압장치, 총안구 등을 달아 장갑차에 준하게 강화되였다.
난동을 부린 히메이어는 종장에는 차량이 기동불능이 되고 경찰에게 포위되자 밀폐된 조종석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종석에서는 7일분의 식량이 발견되었다. 그의 계획대로라면 난동은 최대 7일간 계속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개조한 중장갑 불도저는 12.7mm 중기관총도 빗겨낼 정도로 튼튼한 복합장갑을 씌워 경찰의 총격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동안 히메이어는 이 괴물을 몰아 경찰, 판사, 신문기자를 비롯하여 원한이 있던 이들의 집과 근무처 등 13채의 건축물을 밀어버리는 난동을 부렸다.
최근에도 주목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2024년 12월 4일,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직을 맡던 브라이언 톰슨Brian Robert Thompson이 미국 뉴욕 시내에서 피살당한 사건이 그것이다.
▲ 유나이티드헬스케어 CEO 브라이언 톰슨(화면 중앙)을 저격하는 당시 CCTV 녹화영상 중 일부.
용의자(화면 우측 하단)가 현장 이탈 중 버리고 간 가방에는 재킷과 함께 보드게임 모노폴리 돈이 발견되었고,
현장에서는 Delay(지연), Deny(부정), Defend(방어), Depose(직위해제)라고 적힌 탄피가 발견되었다.
용의자로 지목된 루이지 맨지오니Luigi Nicholas Mangione는 허심탄회한 성명문을 통하여 “미국은 세계에서 1위로 가장 비싼 의료보험 시스템을 갖고 있음에도 기대 수명이 42위 정도에 불과하다”는 언급을 남겨 미국 사람들로부터 위험한 공감을 사고 있다.
그의 성명에 찬동하는 이들은 맨지오니를 영웅시하거나, 용의자의 범행 당시 복장과 유사한 옷차림을 입고 나서며 용의자를 쫓는 경찰에게 혼란을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 길거리에는 다른 건강보험 법인의 중역들의 사진을 현상수배지와 합성하여 마치 그들을 당장 죽이거나 사로잡아야 하는 흉악한 범죄자처럼 묘사한 전단지가 거리에 유행하기도 하였다.
▲ 건강보험회사 중역들의 사진이 마치 사살하여도 무방한 지명수배자처럼 공공장소에 붙어 있다.
‘유사시 재정적 지원을 기대하였던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못하니 그 죄를 물어야 한다’는 사적제재 의식이 분출된 현상이었다.
여기에는 어느 한 쪽이 잘나거나 못났다고 할 수도 없고, 정의도, 공공선도 찾을 수 없다.
굳이 공정함을 찾겠다면 의심의 여지 없는 운동에너지와 물리력밖에 없는, 서로가 서로의 재산 또는 목숨을 해하는 등활지옥(等活地獄)밖에 남지 않는다.
2023년 7월이 떠오른다. 칼부림이 일주일에 두세 건씩 빈발하던 그 시절 말이다.
당시 필자는 버스정류장에서 차편을 기다리던 중, 마주친 행인의 튀어올 듯이 움찔거리던 몸짓과 마주친 눈빛을 의심하며 주머니 속 터보라이터를 찾던 경험이 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희극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며, 슬랩스틱 코미디도 1인칭으로는 고행의 연속이지 않던가.
과연 그런 세상이 다시 펼쳐진다면 요원들과 필자는 얼마나 되는 기대수명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 실제로 해를 입지 않더라도 마음 편히 제 명에 살 수는 있을까.
법이나 정의, 제도, 기준, 패러다임, 인지도식 같은 추상적인 관념조차 전술이라고 논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글을 써내려야 할 정도로 필자의 전술관을 흔드는 기이한 사건들의 누적에 깊은 염려를 표한다.
또다른 불확실의 영역, 2025년에 우리 모두가 발을 들였다.
무엇이 우리의 소중한 것을 어떻게 해할지 모르겠는 조마조마한 미지의 영역이다.
요원들의 물적 완비 못지않게 심적 전술관 또한 단단히 챙기기를 바라며, 혼란한 새해에도 요원들의 몸과 마음만큼은 무탈하기를 필자의 복을 떼어 나누어줘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원한다. 우리 모두 복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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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