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밀리터리ㆍ아웃도어 세상
전술적 일상을 추구하는 요원들을 위한
Plumbum의 전술 논평
Plum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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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3-28 14: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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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34
햇빛이 뿌리고 간 온기를 쓸어내던 칼바람이 점차 게을러지고 있다.
목도리를 안 챙기게 되었고, 외투를 잘 안 여미게 되며, 퇴근길이 어둡지도 않다. 봄이 오는 덕이었다.
필자는 점심시간에 식사 대신 산책을 하며 사옥 주변 녹양역 앞 상권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색을 살피곤 한다. 업이 업인지라 사람들의 옷차림과 모자, 가방 등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행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입은 옷과 잡화를 일일이 들춰볼 수야 없겠다만, 옷이나 소품, 심지어는 프린트된 무늬의 일부에서라도 ‘우드랜드 패턴’이 눈에 띄면 특히 반갑다.
▲ 우드랜드 계열 위장무늬의 대표격, M81 우드랜드.
미군이 채용한 우드랜드 패턴으로, 국군 구형 전투복의 우드랜드 패턴과 비교하면 미묘하게 색감에 차이가 있다.
우드랜드 패턴은 아마 대부분의 군필자 요원들에게 가장 익숙한 위장무늬일 것이다. 30대 중후반 이상 연령대의 요원들에게는 한창 군인이었던 시절에 입었던 전투복으로 떠올리지 않을까.
디지털 패턴 신형 전투복을 입는 젊은 세대의 군필자 및 현역 요원들도 생소하지는 않으리라 짐작한다. 화생방 훈련에서 투명의자 자세로 멜빵을 잡아당기던 방호복 하의를 기억한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랜 역사로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고도 애증을 사는, 일명 ‘개구리 복’이 그것이다.
이번 화에서는 민간의 패션에까지 깊게 스며든 우드랜드 패턴 위장무늬의 기원과 흐름을 짚어보고 요원들이 그 독특한 미학을 일상에서도 즐길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한다.
우드랜드 패턴의 탄생에는 미 육군의 연구개발 부서인 ERDL U.S Army Engineer Research and Development Laboratory에서 개발되어 1968년 베트남전에서 미 해병대와 육군에 대량 보급된 동명의 위장무늬, ‘ERDL 패턴’에서 기원을 짐작할 수 있다.
▲ 미군의 ERDL 패턴(로우랜드) 정글 전투복 상의, 1970년 생산.
베트남전 당시 밀림의 수풀과 나뭇가지 따위를 형상화하여 만든 위장무늬는 ‘잎사귀 무늬Leaf pattern’로도 불린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우드랜드 패턴과 비슷한 색상이지만 풀빛이 강하며, 무늬의 크기가 작고 조밀하다.
습한 흙과 울창한 수목, 칙칙한 그늘이 자아내는 무늬의 나열은 동시대 영국의 DPM Disruptive Pattern Material 이나 독일의 플렉탄 Flecktarn, 프랑스의 리자드 Lizard 패턴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유독 ERDL 패턴에서는 당시 미국이 외딴 베트남에서 시달렸던 고충들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특성들이 있다.
ERDL 패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각각 저지대의 축축하고 수풀이 우거진 늪지대를 반영한 ‘로우랜드 Lowlands / 저지대’와 고산지의 토양, 식생 등을 반영하여 메마른 초목과 흙먼지 빛을 강조한 ‘하이랜드 Highlands / 고지대’가 그것이다.
▲ ERDL 로우랜드 패턴(좌)과 ERDL 하이랜드 패턴(우).
베트남전을 치르던 미군은 점차 내륙 작전에서 활동지역의 고도가 오름에 따라 식생이 변함을 체감한다.
기존의 저지대 위장무늬의 부조화를 느낀 미군은 고지대 식생에 맞춘 ERDL 하이랜드 패턴을 추가로 개발하여 한계를 보완한다.
고도에 따라 기온과 습도, 기후가 달라지며 번성하는 식생 또한 달라진다. 그리고 베트남의 지형은 해안가의 문명화된 도시부터 ‘인도차이나의 지붕’이라 불리는 해발고도 3,147m의 판시팡 산까지 다양한 고도와 식생이 완비되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해야 했다. 베트남의 환영받지 않은 외지인, 미군이라면 더욱 그랬다.
미군의 ERDL 위장무늬는 지대의 고도와 식생에 따라 이원화되어 전술자원의 주변경관에 알맞은 위장효과를 갖추고자 하니, 각각 저지대와 고지대에 맞춘 위장무늬로 분화되었다.
이외에도 EDRL 패턴은 베트남전의 전시 위장무늬답게 교전거리에 따른 실전성을 갖추었다. 훗날의 우드랜드 패턴에 비하면 가늘고 날카로운 얼룩무늬를 적용한 것이 그 특징이다.
베트남전에서는 동남아 열대우림의 울창한 수목으로 인해 적을 조우하는 거리가 짧았다. 대부분의 교전은 수풀 너머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30미터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이를 초과하는 교전거리의 전투는 빈도가 줄어드는 경향을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다.
▲ 베트남전의 전투 양상별 교전거리 비율.
M16과 AK-47의 유효사거리가 무색하게도 베트남전에서 30미터를 초과하는 전투는 20%대에 지나지 않았다.
열대우림의 녹색 장막에 질린 미군은 2차 세계대전의 화염방사기를 다시 꺼내거나 네이팜탄, 심지어는 고엽제를 남용하기에 이른다.
(참고자료 : 논문 「Bang on target?: infantry marksmanship and combat effectiveness in Vietnam」)
베트남전에서의 울창한 식생과 이로 인한 짧은 관측거리를 고려한 ERDL 패턴은 근거리 조우에 걸맞는 작고 세밀한 위장무늬로 착용자의 주변 지물들에 녹아드는 해상도를 연출했다. 덕분에 ERDL 패턴 전투복을 걸친 미군은 풀줄기와 덩굴 가닥들이 하나하나 구분되는 근거리 시야에 교활하게 녹아들며 적의 눈을 속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1980년대가 되었다. 긴장과 평화가 기묘하게 양립하던 냉전冷戰 / Cold War의 시대였다.
베트남전에서 활약하던 ERDL 패턴은 세계의 다른 곳에서도 벌어질 분쟁에 나서기 위한 적응과 진화를 겪는다. 바로 1981년 등장한 미군의 제식 위장무늬, M81 우드랜드 패턴이었다.
이전 베트남 열대우림에서 쓰인 ERDL 패턴은 단거리로부터의 관측을 전제하여 조밀한 무늬가 들어갔었다면, M81 우드랜드 패턴은 관측거리 300m를 전제하여 무늬가 60% 대형화되었다.
위장무늬의 해상도를 낮춘 격인데, 이는 같은 사물도 가까이에서 보면 윤곽과 요철, 명암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보이는 반면 멀리서는 흐릿한 덩어리로 보이는 원리의 응용이었다.
▲ ERDL 패턴 전투복(좌)과 우드랜드 패턴 전투복(우)의 비교.
우드랜드 패턴은 이전의 ERLD 패턴에 비하여 위장무늬가 굵직해졌다.
같은 면적에 큼직한 무늬가 교차하는 위장무늬는 위장의 해상도를 낮추어 원거리 관측에서 눈에 덜 띄는 이점이 있었다.
M81 우드랜드 패턴은 본래의 쓰임새인 미군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 전술업계를 관통했다. 1980년대에 걸쳐 여러 나라가 우드랜드 패턴을 시범 운용 혹은 모방, 개발하거나 정식 도입했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이자 흑해 너머의 소련을 마주한 아시아계 NATO 회원국, 터키(현재 튀르키예)는 1980년대 중반 특수부대를 시작으로 M81 우드랜드 패턴을 참고한 위장무늬를 시범 운용한 끝에 1989년 군의 정식 위장무늬로 채용하였다.
과거부터 ‘프라하의 봄’ 등 소련과 엮이기를 거부하던 체코슬로바키아(현재 체코 공화국 및 슬로바키아) 역시 1985년에 우드랜드 패턴과 유사한 ‘Vz 85’ 위장무늬를 개발하였다.
지중해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지막 관문, 스페인도 1982년에 NATO 가입과 함께 자국군용 우드랜드 패턴을 내놓았다.
같은 1980년대에 소련과 인접하며 크고 작은 대간첩작전을 빈번히 치르던 동북아시아의 분단국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육군의 특수전사령부 및 해군 UDT/SEAL의 전술요원을 필두로 각각 ‘독사복’, ‘해마복’이라는 명칭의 변형 우드랜드 패턴 위장무늬 피복을 사용하였으며, 두 전투복의 위장무늬가 거둔 성공은 1990년대 국군의 통합 전투복으로서 우드랜드 패턴을 보급하는 배경으로 이어졌다.
▲ 육군 특전사 독사복(좌)과 해군 UDT/SEAL 해마복(우)
두 전투복이 쌓은 ‘말할 수 없는’ 성공적인 전과는 국군 통합 전투복의 배경이 되었다.
세계로 뻗어나간 우드랜드 패턴은 도입 국가의 자연환경에 따라 약간의 색상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풀과 흙, 나무, 그늘을 연상시키는 얼룩무늬라는 일관성을 꾸준히 보였다. 그야말로 ‘80년대 택티컬 패션’이라 칭해도 과장이 아닌 우드랜드 전성기였다.
하지만 뜬 해는 저무는 법. 세기를 넘긴 지금, 우드랜드 패턴은 2000년대 초에 미-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무대로 등장한 디지털 카모플라주 패턴과 2010년대에 미군에게 제식 채용된 멀티캠 등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그 와중에 지난 세기의 흙과 풀, 나무와 그늘의 형상은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을 방도를 찾은 모양이다. 우드랜드 패턴은 뜬금없는 패션 분야에서 심상치 않은 두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 2024년 4월 출시된 발렌시아가 카모 바이커 재킷.
주머니 플랩(덮개)에 발렌시아가의 브랜드명이 당당히 박혀있는 모습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전역복에 오버로크를 친 게 아니라, 그 유명한 명품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맞다. 출시 당시 가격은 무려 한화 649만 원.
우드랜드 패턴은 흙과 풀, 나무와 그늘의 색을 큼직한 얼룩으로 교차하여 강렬하고 야성적인 시각적 인상을 전한다.
탁한 명도와 흐릿한 채도, 작고 가는 무늬의 나열로 이른바 ‘보는 맛’이 밋밋한 현용 위장무늬에 비하면 위장에 불리할 수 있으나,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에 목마른 패션 업계에서 우드랜드의 ‘전 직장 해고 사유’는 도리어 환영할 만한 강점이 되었다.
또한 우드랜드 패턴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군용으로 광범위하게 쓰였던 수십 년 치 헤리티지까지 쌓아두었다. 이목을 끌기 위한 이색적 면모와 이질감 없이 시장에 널리 수용될 인지도를 이미 겸비하였으니, 패션계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근래 들어 진행 중인 ‘뉴트로’의 유행까지 겹쳐져 우드랜드 패턴의 런웨이 데뷔는 젊은이들에게까지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과거의 유산은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마치 외국의 것처럼 이국적인 감성을 전하는 마력이 있다. 신세대의 레트로 열풍, 이른바 ‘뉴트로’가 대세로 떠오른 이유다.
마침 냉전~탈냉전 시대를 지난 우드랜드 패턴이 2020년대에 나타나니, 세기를 넘는 시대적 격차는 오히려 신세대가 흥미를 가질 요인이 되었다.
현재 우드랜드 패턴은 앞서 보여준 발렌시아가를 비롯한 명품 패션 브랜드는 물론이며, 실전성에 사활을 거는 전술용품 제조업계에서도 소비자층의 확장을 겨냥하여 설계와 생산에 나서는 참이다. 그만큼 지금 우드랜드 패턴은 전투용 위장무늬로서의 도태 여부를 초월한 파급력을 가졌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 우드랜드 패턴이 적용된 5.11 택티컬 러쉬 12 2.0 백팩
5.11 택티컬이 전술용품 제조사로서의 노하우에 레트로 택티컬 패션감각을 더한 신상품을 출시했다.
그 인기는 평점이 말해주는 대로다.
(출처 : 5.11 택티컬 웹사이트)
전장에서 주변의 지형지물에 녹아들며 적의 눈에 덜 띄도록 하기 위한 우드랜드 패턴은 이제 사람들의 옷과 잡화 등 패션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며 유쾌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전술이 분야를 막론하고 널리 퍼져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로움을 전하기를 바라는 필자가 길거리에서 우드랜드 패턴을 보고 내심 기뻐하는 이유다.
기온이 오르고 낮이 길어지며 개강이나 축제, 나들이 등 만남이 늘어나는 봄이다.
군필자 요원들에게 심각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우드랜드 패턴의 의류나 잡화로 전술적 독특함과 사회적 친숙함 사이의 균형 잡힌 파격을 노려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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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