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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적 일상을 추구하는 요원들을 위한
Plumbum의 전술 논평

소련에서 배우는 ''단순무식'' 전술

NETPX 2023-12-06 14:18:14 댓글 4 조회수896

 전술적인 태도나 행동은 우리 요원들이 처하게 될 상황을 앞서 생각하고, 상대의 수를 읽어내어 적의 자원이 나보다 빨리 낭비되도록 유도하는 등 지능적인 전제를 깔고 있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전술이라 하면 복잡하거나, 수많은 실전경험에서 비롯된 노하우 등이 갖춰져야만 구사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발상과 행동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의외로 “단순무식함” 또한 하나의 전술에 속한다.


 “우라돌격”이나 “크레이지 이반”, “탱크 데산트” 등 대범함을 넘어 무식한 기행(奇行)으로 요원들에게 각인된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냉전 시기 주력 화기인 AK-47은 개인화기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완벽한 공학의 결과물로 평가받는다.


 우선 소련이라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크고 넓은 나라로, 인구는 가히 2억에 이른다. 교육은 질보다는 양에 치중했다.


 고등교육까지 온전히 받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였으며(AK-47의 설계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조차 중졸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공학과 철학 등을 배운 독일 유학파 엘리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 전쟁의 발발과 스탈린의 절대적인 집권으로 탄압받게 되었다.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은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속칭 “무지렁이”일 수밖에 없었다. “무지렁이 인민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전술적 행동을 가르치며 “위대한 어머니 조국을 유린하려는 적들을 무찔러라”라고 외쳐야 하는 당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난처한 점이 많았으리라.


 총의 구조가 복잡하면 올바른 조작법을 가르치기 힘들며, 내부의 세밀한 부품들은 생업과 노동으로 다져져 체력이 넘치는 인민들의 험악한 조작에 쉽게 망가질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소련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단순무식한 개인화기”가 절실하게 되었다.


 AK-47 소총은 윗총몸에 해당하는 덮개를 열면, 복좌용수철과 더불어 K2 소총의 가스활대, 노리쇠뭉치, 노리쇠 손잡이에 해당되는 부품들이 한데 합쳐진 부품을 꺼낼 수 있다. 그렇게 2개의 큰 부품이 끝으로, 더는 총몸 안에서 꺼낼 내장부품이 없다.




▲ AK-47계열 소총의 분해. 간결하면서도 제 기능을 다 하는 “단순무식함”은 후대의 엔지니어들에게도 많은 인상을 남겼다.


 무엇이 어디에 맞물리는지 물을 것도 없는 단순함은 가르치기도 쉽고, 배워 다루기도 쉬우며, 혹사에 가까운 험악한 조작에서도 고장날 여지 또한 줄어드는 신뢰도까지 덤으로 얻었다. 진정한 “인민을 위한 전천후 소총”의 탄생이었다.


 풍속과 풍향, 습도, 삼각함수에, 심지어는 지구의 자전에 의한 투사체의 궤적 왜곡 현상인 코리올리 힘 등,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가 난무하는 저격 분야도 소련은 “단순무식함”으로 우직하게 해결해냈다. 바로 ‘잘 모르겠으면 보여줄 테니, 보이는 대로 알아서 하면 된다’는 방법이다.


 소련의 반자동 저격총인 SVD 드라구노프의 전용 조준경으로 잘 알려진 PSO-1의 경통 속에는, 여느 망원조준경에서는 보기 힘든 도표가 십자선의 왼쪽 아래에 그려져 있다.




▲ 탄도학을 몰라도 간단한 요령으로 거리를 짐작할 수 있게 배려된 PSO-1의 모습. 중앙의 조준점으로부터 7~8시 방향의 도표가 돋보인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신장을 1.7미터로 가정하여, 표적의 키를 100미터 단위로 그려진 도표에 대어 봄으로서 사수와 목표 사이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로써 사수는 복잡한 탄도학을 익혀 일일이 암산하지 않아도 야전에서 적병의 몸을 능히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과거 소련이 냉전시대 우리의 주요 적국이었으며, 인권이 발전한 오늘날은 개인에 대한 배려보다 모두를 위한 희생을 강요하는 태도 때문에 그렇게까지 참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련이 남긴 “단순무식함”은 20세기 냉전의 이념을 넘어 지금까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술이 발전하며 신기술과 신공법, 신소재로 치장한 화려한 장비들이 요원들이 이전부터 애용하던 도구들을 대신하는 오늘날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 차량의 사이드 미러의 자리를 대신한 카메라 장치. 공기저항이 적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카메라나 광학 회로, 디스플레이 중 하나라도 오류가 나면 기존의 단순한 거울만도 못하게 된다.


 유료주차장 초입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는 곧잘 뽑아 드시던 어르신이, 잠시 후 주차장 출구의 키오스크 앞에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눈길로 필자를 돌아보던 적이 있었다. 자판기나 키오스크나 둘 다 원리는 다를 바 없건만, 단순한 기계식 단추가 화려한 그래픽과 소프트웨어, 애니메이션이 가미된 터치식 디스플레이로 대체되었을 뿐인데 그 모양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은 20세기에 비하여 큰 기술적 진보를 이루었지만, 막상 기술을 과시하려는 듯한 화려함에 어째서인지 직관적인 해결책들이 구시대적이거나 원시적인 것으로 치부되며 외면받곤 한다.




▲ 적 저격수가 있으리라 예상되는 시가지에서 저격수의 존재유무와 방향, 거리를 짐작하기 위한 미끼를 내건 미군 저격수의 모습. 효과적이기만 하다면 바보 같은 단순한 요령도 해결책이 된다.

 

 비록 우리가 소련과 같은 전체주의 사회도 아니며, 당시에 비해 월등히 발전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지만, 종종 살면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한 기교보다도 “단순무식”한 직관적 전술을 강구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댓글 4

살아남은흑우

2023-12-22 21:53:32

 

러시아나 중국은 최첨단 공정으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미사일이나 인공위성에 주로 사용되는 GPU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미사일이나 위성은 극한의 환경 때문에 오랜 기간 대중의 사용을 통해 안정성이 입증된 성능이 매우 낮은 GPU나 오래된 50~60나노급 반도체를 사용합니다. 특히 러시아는 3~4년 전부터 인텔과 AMD에 이어 자체적으로 CPU를 생산해 관공서 PC로 사용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중국도 구형 반도체는 물론 최근 7나노급 반도체까지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미국도 러시아 우주로켓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기술력이 부족해 정교하고 복잡한 무기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더더기 없는 단순한 무기 설계는 전시 상황에서 군수공장이 파괴돼 무기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으면 해외에서 무기를 수입할 수 있지만 러시아, 중국 등 자주국방 국가들에서는 첨단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의 정밀가공 기계가 파괴되면 생산라인 복구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듣기로는 러시아제 무기 중에 항공기 엔진이나 대공미사일은 내구성은 강하지만 수명이 짧아서 가격이 1+1이라고 들었습니다. 반면 성능 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무기와 맞먹거나 한 세대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수호이 전투기 엔진은 F-35보다 엔진 수명이 짧지만 활주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이륙할 수 있고, 러시아 S-400 대공미사일은 미국 미사일보다 한 세대 앞서 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분명한 것은 과거에는 포병이 중요한 자산이지만, 미래에는 드론이 중요한 게임 체인저라는 것입니다.

물론 무거운 폭발물을 싣고 날아다니는 대형 드론도 있지만, 이번 전쟁에서는 당사국들이 분대 단위로 소형 드론병을 운용해 수류탄과 박격포 낙하 등 경미한 공격은 물론 적의 움직임을 정찰해 많은 전과를 올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드론병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PC의 보급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키보드 타이핑에 익숙했던 것처럼 아이들이 드론 장난감을 자주 가지고 놀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론을 받더라도 우리나라는 비행제한이 너무 많아 드론 조종을 연습할 곳이 없고, 우리 군에서도 드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충분한 예산이 배정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px

2023-12-11 01:00:45

 

제가 콜드 스틸 스페셜 포스 삽을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군요. ^^

야옹이최고

2023-12-06 15:27:53

 

책을 읽으면 지식으로 날 채우는 느낌이 든다죠 ?
딱 이 칼럼이 그러네요. 똑같은 12월을 겪는데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니....
항상 가볍게 읽고 눈팅만 하다가 오늘은 이 칼럼 내용이 신선하기도 하고 좋아서 댓글남깁니다.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저의 시선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이네요.
종종 읽으러 오겠습니다.

Plumbum

2023-12-06 14:39:59

 

안녕하십니까, 넷피엑스 요원 여러분. 세 번째 글로 인사드리는 택티컬 에디터 Plumbum입니다.

어느덧 12월이네요. 소련이 망했던 게 마침 1991년 12월 26일이니, 12월 기념 겸하여 소련의 소소한 전술 요소를 주제로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넷피엑스 다른 분들과 협업하며, 사람들의 패턴과 행동양식을 눈여겨보곤 합니다.

그 중 특히 누군가의 아버지이기도 한 분들은 특이하게도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도 상황과 원리에 대한 설명을 잘 하는 재주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어떤 지식도 없는 순수한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 아버지들은 수렴진화를 하는 것 같다…는 게 제 소소한 가설입니다만.

아이 아빠들은 복잡한 이론과 원리를 전문용어와 참고자료를 인용하며 설명하기보다도, 장난감을 누가 가져갔다느니, 과자가 몇 개가 있다느니, 그런 단순하고도 한편으로는 유치한 예시와 비유로 아이의 이해를 돕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세상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아이에게 세상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과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의 질문공세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오늘의 글감인 “전술적 단순무식함”을 택한 게 아닐까 싶네요.

긴 글을 읽어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더욱 일상에 도움이 될 전술적 분석과 사례들로 다음 화에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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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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